여러분, 언어를 공부할 때 “원서 읽기”를 강조하면서 열심히 읽어야 한다는 유튜브나 콘텐츠, 많이 들어보셨을 거예요.
맞아요. 읽기는 장점이 정말 많죠. 급할 것 없이 내가 원하는 속도로 천천히 읽을 수 있고, 눈으로 문장을 보다 보니 내가 모르는 단어가 뭔지도 정확히 알 수 있어요. 듣기에 비해 부담도 적고요.
그런데 이 읽기, 정말 효과적일까요?
목차
읽을 때, 우리 뇌에서 벌어지는 일
우선 읽기라는 행위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부터 볼게요.
우리가 글을 읽을 때, 실제로 소리를 내지 않더라도 우리 뇌는 머릿속에서 그 소리를 읽고 있어요.
실제로 여러 연구진이 이걸 증명했어요. 2012년 페론베르톨로티 연구팀은 환자의 뇌에 직접 전극을 꽂고 확인했죠. 묵독을 하는 동안에도 소리를 처리하는 뇌 영역이 켜지더라는 거예요. 입은 가만히 있는데 말이죠.
즉 책을 읽는다는 건, 사실 “소리”라는 데이터를 우리 뇌에 계속 집어넣는 행위예요. 마치 머릿속에서 누군가가 그 글을 또박또박 소리 내어 읽어주는 것처럼요. 입은 다물고 있어도 말이죠.
갑자기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고요? 계속 이어서 볼게요.
그런데 그 발음, 정확한가요?
여기서 하나 여쭤볼게요. 여러분이 지금 배우는 그 언어, 발음을 완벽하게 하고 있다고 자신하세요?
아니라고요? 그럼 문제가 좀 심각해져요.
머릿속에서 읽어주는 그 목소리가, 바로 여러분의 잘못된 발음으로 읽고 있다는 뜻이거든요.
원어민이라면 괜찮아요. 그 목소리가 올바른 발음으로 읽어주니까, 읽을수록 좋은 발음을 한 번 더 다지는 셈이죠.
그런데 아직 그 언어의 소리 체계를 제대로 못 세운 사람은요? 자기 모국어로 비틀린 발음으로 읽게 돼요. 가령 일본어 ‘う’를 그냥 ‘우’라고 해버리죠.
우리 뇌엔 습관이 있어요. 애매하거나 익숙지 않은 소리가 들어오면, 이미 익숙한 소리로 바꿔서 처리해 버리죠. 뇌는 늘 효율을 좇거든요. 그게 에너지를 가장 덜 쓰는 길이니까요.
그러다 보니 읽을 때마다, 그 틀린 발음을 뇌에 계속 인풋으로 집어넣게 되는 거예요.
이게 뭘 의미할까요. 읽기가, 그 틀린 발음을 여러분 뇌에 굳히는 역할을 한다는 거예요. 우리 뇌는 자기가 가장 많이 받아들인 쪽으로 모양을 잡아가거든요. 많이 들은 소리, 많이 읽은 소리가 곧 그 사람의 ‘기준’이 되는 거죠. 그러니 틀린 발음을 자꾸 넣을수록, 뇌 속에선 그게 점점 ‘정답’으로 자리 잡아요.
한 번 박히면 되돌리기 어렵습니다
발음 시스템은 한 번 박히면 되돌리기가 상당히 어려워요.
문법이나 유창성 같은 건 그나마 나아요. 좀 틀려도 인풋을 많이 받으면 점점 개선되거든요.
그런데 한 번 굳은 발음은 달라요. 원어민의 올바른 발음을 듣게 되더라도, 내 뇌가 그걸 ‘내가 옳다고 믿는 발음’으로 슬쩍 바꿔서 받아들여요. 결국 같은 틀린 발음을 계속 인풋으로 받는 셈이죠.
그래서 듣기 인풋을 늘린다고 저절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에요. 처음부터 제대로 잡고 가지 않으면, 나중엔 사실상 개선하기가 불가능합니다.
그럼 읽기는 언제 해야 할까요
개인적으로 저는, 아이들이 모국어를 익히는 순서를 보면 답이 나온다고 생각해요.
아이들은 태어나서 한동안 듣기부터 잔뜩 쌓아요. 말은 그 위에서 트이고요. 글자를 읽기 시작하는 건 한참 뒤, 예닐곱 살은 되어서죠.
이게 뭘 의미할까요. 아이가 글을 읽기 시작할 때는, 이미 사운드 시스템(발음과 소리)을 완벽히 갖추고 모국어가 유창한 상태라는 거예요. 그 아이에게 읽기란, 이미 귀로 아는 소리를 글자에 맵핑시키는 일이죠. 그 소리는 뜻이 통하는 이해되는 말을 충분히 들으면서 익혔고요.
우리의 읽기도 그렇게 되어야 해요. 그러니 처음부터 여러분의 사운드 시스템을 완벽하게 구축하셔야 됩니다.
이미 너무 많은 시간을 거꾸로 해왔다는 분들은요? 지금부터라도 읽기를 잠시 멈추고, 듣기로 최대한 이 문제를 메워주셔야 해요.
오늘 하나만
읽기를 꾸준히 해오신 분들에겐, 오늘 얘기가 좀 충격적이었을지도 몰라요.
정리하면 하나예요. 소리가 먼저, 글자는 그 위에. 순서만 지키면 됩니다.
지금이라도 알았으니, 듣기에 조금 더 무게를 실어주세요.
물론 발음에 크게 신경 안 쓰고 편하게 즐기고 싶다면, 읽기 그대로 하셔도 괜찮아요. 읽기도 그 자체로 좋은 선택이고, 어휘력과 표현의 풍부함을 키워주니까요.
그런데 정말 원어민 같은 발음을 갖고 싶은, 하드코어 목표를 가진 분이라면. 이 글이 꼭 도움이 됐으면 좋겠어요.
언어 습득 연구 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