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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법을 공부하면 언어 습득에 과연 효율적일까?

요즘에는 언어 습득에 관한 콘텐츠가 많이 늘어서, 한국에서도 “언어를 익히려면 인풋, 그러니까 comprehensible input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분이 많아졌어요.

그런데 다른 한편에서는 이렇게 말하는 분들도 계세요. 인풋만 하는 것보다, 문법을 먼저 공부한 뒤에 인풋을 하는 게 더 효과적일 수 있다고요. 너무 어린아이처럼 배우려는 건 과하다면서, “균형 있게 가자”고 점잖게 정리하시는 분들도 많죠.

얼핏 들으면 합리적이에요. 한쪽으로 치우치는 건 좋지 않다는 우리 상식에도 잘 맞고요.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오늘은 “문법을 먼저 공부하는 게 효율적”이라는 주장이 왜 위험할 수 있는지, 티모시 갤웨이(Timothy Gallwey)가 쓴 《이너 게임》이라는 책으로 한번 알아볼게요.

한 손엔 두꺼운 문법책, 다른 손엔 헤드폰을 들고 '균형'을 잡는 학습자. 그런데 문법책에서 풀려나온 사슬이 두 발목을 휘감아 앞으로 못 나가게 묶고 있다

목차

작은 실험 하나 해볼게요

이 책에 이런 장면이 나와요. 자세 하나를 배운다고 해볼게요. 골프 스윙이든 테니스 자세든요.

첫 번째. 코치가 옆에서 “왼팔을 좀 더 내려보세요” 하고 말로 알려줘요.

두 번째. 코치가 아무 말 없이, 직접 왼팔을 내리는 모습을 보여줘요.

여러분, 이거 직관적으로는 똑같은 말 아닌가요? 둘 다 “왼팔을 내려라”라는 정보잖아요. 그런데 이 책에서는 두 번째가 훨씬 강력하다고 말해요. 무슨 말일까요?

이 책에서 Self 2라고 부르는 부분, 우리가 흔히 절차적 기억이나 무의식이라고도 부르는 그 영역이요. 이 부분은 같은 정보를 전혀 다르게 받아들인다는 거예요.

우리가 받아들이는 정보엔 크게 두 가지 형태가 있다고 해요.

첫 번째, 언어 형태로 바뀐 정보. “왼팔을 더 내려라”처럼 말로 포장된 정보죠.

두 번째, 언어로 바뀌기 전 원형 그대로의 정보. 코치가 직접 자세를 보여줄 때, 코치 모양이랑 내 모양이 뭐가 다른지 확 깨닫는 그 느낌. 말로 풀리기도 전에 통째로 와닿는 그 느낌 말이에요.

왼쪽은 코치의 말을 톱니바퀴로 끙끙 해독하느라 몸이 굳은 학생, 오른쪽은 코치 자세를 해독 없이 그대로 매끄럽게 따라 그리는 학생

그 원형, 사실 우리도 자주 느껴요

이렇게 말하면 무슨 소리인가 싶으실 수도 있어요. 그런데 이 ‘언어로 바뀌기 전의 원형’, 사실 우리도 자주 겪고 있거든요.

무슨 말을 하고 싶은데 입 끝에서 말이 안 나올 때, 경험해 보셨죠? 하고 싶은 말은 분명히 있는데, 아직 말로는 안 나온 상태.

그게 바로 원형 그대로의 정보예요. 머릿속엔 또렷이 있는데, 아직 언어라는 옷을 안 입은 거죠.

우리는 보통 생각이 ‘언어’라고, 머릿속에서 단어가 줄줄이 나열되는 거라고 여기잖아요. 그런데 사실은 그 반대예요. 원형이 먼저 있고, 말은 거기에 나중에 입히는 옷입니다.

머릿속에 또렷한 알맹이(원형)가 먼저 떠 있고, 그 위에 '단어'라는 옷이 나중에 입혀지는 모습

우리 몸한테는 모국어가 따로 있어요

갤웨이는 이렇게 봐요. 우리 몸, 즉 이 Self 2가 알아듣는 모국어는 바로 그 원형 그대로의 정보라고요.

그러니 원형을 그대로 넘기지 않고 언어로 포장해서 주면, Self 2한테는 그게 마치 외국어처럼 느껴져요. 못 알아듣는 거죠.

실제로 그래요. 우리는 이미 한국어를 완벽하게 하잖아요. 그런데 우리가 “은/는”이랑 “이/가”를 쓸 때, “지금은 주어를 강조하니까 ‘는’을 써야지” 하고 머릿속으로 규칙을 떠올리며 배운 적도, 그렇게 쓴 적도 없으실 거예요.

누가 규칙으로 알려준 적도 없어요. 우리가 한 거라곤, 그게 실제로 어떻게 쓰이는지 수없이 본 것뿐이에요. 그저 봤을 뿐인데 한 번도 안 틀리게 됐죠. 그게 바로 몸의 모국어로 받아들인 거예요.

몸 안의 또 하나의 자아(Self 2)가 그림 말풍선으로만 소통하는데, 바깥에서 문법 규칙이 읽을 수 없는 외국어 글자로 날아와 못 알아듣는 모습

그래서 ‘문법 먼저’가 비효율적인 거예요

자, 이제 다시 문법 얘기로 돌아가 볼까요?

문법을 배우면 생기는 가장 큰 문제 중 하나가, 인풋을 받을 때 그 문법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는 거예요. 문법을 모르면 떠올릴 정보가 없으니 그냥 받아들이는데, 아는 게 있으면 그 언어 지식이 자꾸 먼저 튀어나오거든요.

아까 자세를 배울 때, 시범을 보고도 “왼팔을 더 내려라”라는 말로 먼저 바꿔 생각하던 거랑 똑같아요. 문법이라는 언어 정보를 먼저 돌리게 되는 거죠. 그러면 정작 일해야 할 Self 2는 작동을 안 해요.

그래서 ‘문법 먼저’가 비효율적이라는 거예요.

물론 효율적으로 느껴지죠. 그런데 그 “효율적인 것 같다”는 건 여러분의 의식이 하는 말이에요. 습득이 일어나는 부분이 아니라, 의식이 하는 말이죠. 하지만 정작 습득이 일어나는 쪽, 이 책에서 Self 2라고 하는 부분에서 보면, 아주 비효율적인 거고요.

그런데, 인풋도 결국 ‘말’이잖아요?

여기까지 읽고 이런 의문이 드는 분도 있을 거예요.

앞에서 이렇게 말했죠. 원형을 그대로 안 주고 말로 포장해서 주면, 몸은 그걸 외국어처럼 못 알아듣는다고. 그런데 잠깐, 우리가 ‘인풋’이라고 부르는 것, 그러니까 외국어를 듣고 읽는 것도 결국 다 ‘말’이고 ‘언어’잖아요. 그럼 인풋도 똑같이 ‘말로 포장된 정보’인 셈인데, 왜 인풋은 괜찮고 문법은 안 된다는 걸까요?

얼핏 모순처럼 보이죠. 그런데 겉이 같은 ‘언어’라고 해서, 받아들이는 방식까지 같은 건 아니에요. 핵심은 표면이 아니라 메커니즘이거든요.

문법 지식을 떠올려 볼게요. 우리가 어떤 문법 규칙을 알고 있으면, 그게 바로 습득되는 게 아니에요. 먼저 그 규칙을 작업 기억(working memory)에 올려놓죠. 그리고 그 올려놓은 상태로, 지금 들어오는 인풋이랑 하나하나 비교하는 작업을 해요. 의식이 끼어들어 따지는 거죠.

그런데 실제로 언어를 쓸 때는 좀 달라요. 우리가 대화를 할 때, 말을 할 때, 머릿속에 무슨 정보를 올려놓고 비교하던가요? 아니죠. 그냥 무의식적으로 나와요.

그러니까 겉은 똑같은 ‘말’이고 똑같은 언어지만, 그걸 받아들이는 메커니즘은 전혀 다른 거예요.

아까 코치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 볼까요? 코치가 직접 왼팔을 내리는 모습을 보고 고치면 효과적이라고 했죠. 그런데 만약 그걸 보고 내가 머릿속으로 ‘아, 왼팔을 내리는 자세가 맞구나. 왼팔을 내려볼까?‘라고 생각하는 순간, 이 정보는 바로 작업 기억으로 올라가게 되고요. 이 말은 다시 말하면, 코치가 옆에서 “왼팔을 좀 더 내려보세요” 하고 말로 알려주는 것과 같은 메커니즘이 되어버립니다. 즉 같은 부작용이 생기는 거죠.

오늘 하나만

오늘 내용, 어떠셨는지 모르겠어요. 언어 습득에 관한 이야기는 우리 직관과 반대인 부분이 꽤 있거든요.

그러니 언어를 익힐 때, 그리고 인풋으로 받을 때, 문법 형태가 어떤지 따지기보다 그냥 그 의미에 한번 푹 집중해 보면 어떨까요?

문법책은 덮어둔 채 헤드폰 끼고 눈 감으니 의미가 그림처럼 몸속으로 흘러 들어오고, 까마귀 카라스가 엄지를 드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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