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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영어를 공부하셨나요, 습득하셨나요?

“영어 공부가 공부지, 습득은 또 뭐야?”

이렇게 생각하신 분, 많으시죠?

우리는 늘 ‘영어 공부’라고 하지, ‘영어 습득’이라는 표현은 덜 쓰는 편이죠.

그런데 이 둘, 영어로 번역하면 전혀 다른 용어예요. 공부는 learning. 습득은 acquisition.

한국에서는 이 구분을 크게 하지 않는 편이거든요. 문법부터 떼는 우리 교육에선 둘을 나눌 일이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바로 이걸 모르고 지나친 게, 여러분이 10년 넘게 영어를 붙잡고도 입이 안 떨어지는 진짜 이유입니다.

머릿속엔 영어가 가득한데 입은 지퍼로 잠긴 듯 말이 안 나오는 한국인 학습자

목차

습득은 무의식이 만듭니다

습득이 뭘까요. 쉽게 말하면, 무의식에 새겨진 지식이에요.

절차 기억(procedural memory)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implicit learning, 암묵적 학습이라고도 합니다. 용어는 사람마다 다르게 쓰는데, 그게 중요한 건 아니에요. 핵심은 하나입니다.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저절로 만들어지는 지식.

의식적 학습 통로와 무의식적 습득 통로가 벽으로 분리되어 서로 연결되지 않는 두 회로

사실 새로운 얘기도 아니에요. 우리가 한국어를 할 때 문법을 떠올리지 않잖아요. 그냥 나오죠. 그게 습득된 무의식 지식입니다.

그런데 이 ‘습득’과 ‘공부’를 처음으로 또렷이 갈라놓은 사람이 있어요. 스티븐 크라센(Stephen Krashen). 남캘리포니아대(USC) 명예교수이고, 제2언어 습득 연구에서 논문만 480편 넘게 쓴, 이 분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학자 중 한 명입니다.

그가 내놓은 이 구분에는 정확한 이름이 있어요. 습득-학습 가설(Acquisition-Learning Hypothesis)입니다. ‘가설’이라는 말 때문에 한 사람의 추측처럼 들릴 수 있는데, 그렇지 않아요. 1980년대에 제안된 뒤로 40년 넘게 연구가 쌓였습니다. 이제 학계에서는 이걸 가설이라기보다, 검증을 거쳐 사실로 굳어진 정설로 받아들여요.

크라센과 오래 함께 연구해온 언어교육 연구자 제프 맥퀼런(Jeff McQuillan)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언어를 쓸 때, 그 99%는 습득된 지식에서 나온다고. 공부해서 외운 의식적 지식은 어쩌다 한 번 쓸 뿐이고요. [7: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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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왜 ‘습득’이어야 할까

자전거를 떠올려 보세요. 핸들을 몇 도 꺾을지 계산하며 타는 사람은 없습니다. 몸이 알아서 하죠.

빠른 동작은 전부 무의식이 맡아요. 운전도 그렇죠.

말하기도 똑같습니다. 대화는 실시간이거든요. 상대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내 말이 나가야 해요.

그 찰나에 ‘3인칭 단수니까 s, 가정법이니까 과거…’ 따지고 있으면? 대화는 이미 저만치 갔습니다.

자전거 탈 때 핸들 각도를 계산하지 않듯, 빠른 동작은 무의식이 맡는다

그래서 이 차이가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순간이 있어요.

읽기는 됩니다. 어려운 지문도 시간을 들이면 해석되죠. 읽기는 시간을 주니까요. 멈춰서 따지고 곱씹을 여유가 있어요.

그런데 같은 사람이 입을 여는 순간, 유치원생이 됩니다.

이상하지 않나요. 같은 머릿속인데요.

답은 간단해요. 의식 속엔 영어가 가득한데, 무의식 속엔 텅 비었거든요.

읽기는 의식 창고에서 천천히 꺼내면 됩니다. 말하기는 무의식 창고에서 즉시 꺼내야 하고요. 그 창고가 비었으니, 말이 안 나오는 거예요.

능력 문제가 아닙니다. 채운 적 없는 창고를 뒤지고 있을 뿐이죠.

의식 창고는 책으로 가득한데 무의식 창고는 텅 비어 거미줄만 — 읽기는 되는데 말하기는 안 되는 이유

그럼 그 창고, 어떻게 채울까요

아마 여러분이 유튜브에서 가장 많이 본 방법일 거예요. 문장을 통째로 외워라. 특정 패턴을 입에 붙을 때까지 반복해라. 그러면 실전에서 튀어나온다.

사실 일리가 있어요. 그것도 무의식에 새기는 한 가지 방법이긴 하거든요.

원리는 이래요. 수영을 처음 배울 때, 같은 동작을 수없이 반복하잖아요. 운전도 그렇고요. 처음엔 의식적으로 배우다가, 그 동작을 계속 반복하면, 어느새 의식하지 않고도 하게 되죠.

그 메커니즘대로라면, 패턴 반복도 효과가 있을 수 있어요.

하지만 언어에서 이 방법을 쓰면, 부작용이 따라옵니다. 그것도 한번 생기면 되돌리기 힘든.

이건 오늘 주제를 벗어나니, 다음 글에서 따로 풀게요.

오늘 하나만

여러분은 영어를 공부했지, 습득한 적이 없습니다.

이 둘은 다른 회로예요. 평생 공부만 했으니, 말이 안 나오는 게 당연합니다.

좋은 소식. 무의식 창고는 나이와 상관없이 채울 수 있어요. 늦지 않았습니다.

그 창고를 채우는 진짜 방법은, 바로 이해 가능한 입력이에요.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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